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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2-04-23 조회수 8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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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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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 나라들은 한 때 불교의 영향으로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지역 중의 하나였다. 이들 세 나라 모두 불교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있었으나,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많은 외세와 그들의 영향력이 서서히 잠식해 들어왔다. 16, 7세기, 선교사들과 식민지 정복자들이 들어오면서 전쟁과 황폐화 과정을 이어졌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1666년 이후로 남베트남에 굳건하게 뿌리를 내렸고, 다음으로 캄푸치아에 들어갔고, 라오스에는 1885년 이후에 들어갔다. 개신교 선교사들은 그보다 훨씬 후에 도착하였다. 17세기에서 18세기에 인도차이나 반도의 북부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기독교에 대한 극심한 박해가 이어졌다. 종교적, 정치적 이유로 일어난 이 박해들로 인하여 수천 명의 기독교인들이 순교를 당했다. 후에 캄보디아 왕조들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고, 그들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라는 명칭을 얻었다.

 

캄보디아 왕국 (Kingdom of Cambodia)

 

통계

인구 : 1,330만 명

정부형태 : 입헌군주제 하의 다당제 민주주의

언어 : 크메르어(Khmer) 외에 프랑스어, 중국어, 베트남어, 캄어(Cham), 말레이어, 브라오어(Brao), 쿠이어(Kui), 몽어(Mhong), 피에르어(Pear) 기타

문맹퇴치율 : 66%

종교 : 소승 불교 95%, 기독교 1% (대부분 독립교회), 기타 4%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없음

 

역사

캄보디아는 태국과 라오스, 베트남으로 북쪽, 동쪽, 남쪽이 둘러싸여 있고, 남서쪽으로 태국만에 접해있는 동남아시아의 국가이다. 캄보디아는 1975년 발생한 대량 학살로 유명하다. 그 이전 시기에 수세기동안 평화기를 보낸 적도 있으나 베트남 전쟁의 발발로 인하여 캄보디아(혹은 캄푸치아)는 피할 수 없는 참혹한 시절을 맞았다. 6세기 경 크메르인으로 알려진 민족이 이 지역에 제국을 건설하였고, 여러 세기동안 존립했었다. 19세기 중엽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1953년 독립을 얻었고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시기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인접한 베트남에서 전쟁이 일어나면서 점차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고, 캄보디아에도 크메르 루즈라고 불리는 공산주의 반군운동이 힘을 얻기 시작하였다. 1970년 일어난 쿠데타로 우익성향의 반베트남 정부는 더욱 쇠락해갔고, 캄보디아 내에 거주하던 수천 명의 베트남인들이 학살당했다. 계속된 내전으로 수많은 인명 피해와 전국적인 파괴가 초래되었다.

 

1975, 크메르 루즈가 수도 프놈펜을 점령하면서 전국적인 통치력을 장악하였고, 극단적인 사회 개혁이 시작되었다. 모든 국민들은 도시지역에서 쫓겨나 노동현장으로 이주해야 했고, 그곳에서 많은 이들이 사망하였다. 전문직에 있거나 교육을 받은 이들을 거의 멸절하고자 하였다. 교수와 교사들의 75퍼센트와 대학생의 96퍼센트가 살해당했다. 크메르 루즈가 집권하고 4년 동안 적어도 3백만 명의 국민이 죽었다. 또한 크메르 루즈는 모든 종교를 박멸하고자 하였다. 90퍼센트에 달하는 불교 승려들과 비구니들이 살해당했고,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는 기독교인들이 죽었다.

 

1978, 캄푸치아 반군의 지원을 받으며 베트남군대가 개입하여 크메르 루즈를 외곽지역으로 몰아냈으나 그때부터 13년간 내전이 계속되었다. 1993년 유엔의 감시 하에 선거가 치러졌고, 1990년대 중반부터 크메르 루즈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쇠퇴하면서 어느 정도 외형적인 안정기가 회복되었다. 1998년 전국적인 선거를 통하여 들어선 연립정부는 정치적 안정과 크메르 루즈군의 항복을 이끌어 냈다.

 

17세기와 18세기에 캄보디아에 기독교가 들어왔다. 20세기 들어와 몇 개의 독립교단들이 세워졌으며, 신사도교회(New Apostolic Church)는 현재 캄보디아에서 가장 큰 교세를 가지고 있는 교단이다.


라오스 인민 민주 공화국 (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

 

통계

인구 : 600만 명

정부형태 : 공산당 일당독재

언어 : 라오스어 외에 프랑스어, 중국어, 태국어, 베트남어, 영어와 70여 부족언어

문맹퇴치율 : 56%

종교 : 불교 49%, 소수민족 종교 42%, 기독교 2%, 중국계 부족종교 1%, 이슬람교 1%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없음

 

역사

리오스는 사면이 육지로 둘러싸인 남아시아 반도의 내륙국가이다. 북쪽으로 미얀마와 중국, 동쪽으로 베트남, 남쪽으로 캄보디아, 서쪽으로 태국에 접해있다.

 

14세기 들어와 처음으로 하나의 정부 아래 통합되었다. 1713년 내부적인 갈등으로 라오스는 세 개의 왕국으로 분열되었고, 나라는 외부의 침략에 송두리째 노출되었다. 독립을 유지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싸워왔지만, 결국 1893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인도차이나 공산당이 결성되면서 다시 독립을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다. 인도차이나 공산당은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에서 자치권을 위해 투쟁하는 독립운동단체들을 지도하였다. 1947년 라오스는 입헌군주국이 되었고, 1949년 프랑스령 내에서 제한적 자치권을 갖는 나라가 되었다. 라오스의 독립은 1954년 제네바에서 열린 인도차이나 반도의 평화에 대한 제네바 조약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제네바 조약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불안정한 내전 상태로 남아있었다.

 

1954년부터 1975년 동안의 내전으로 막대한 삼림과 재산의 파괴가 전국적인 차원에서 일어났다. 전투의 주요 양상은 인접한 몇 나라들의 상황과 유사했다. 이들의 전투는 본질적으로 농촌에 기반을 둔 공산주의와 민주적 자본주의의 싸움이었다. 미국이 개입한 베트남전에서 라오스는 미국에 연합하였다. 그로 인해 1975년 미군이 동남아시아에서 완전히 철수하자 베트남이 라오스로 침략하여 6세기 동안 계속되어온 왕조를 무너트리고 공산당이 이끄는 라오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을 세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 라오스는 베트남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이후 공산당 독재는 점차적으로 국가가 통제하는 자본주의 형태로 바뀌어갔고, 1997년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 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에 가입하였다.

 

라오스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대표적인 저개발국들 중 하나이다. 현재 라오스에는 철도 시설이 없으며, 전국적으로 포장된 도로는 겨우 2천 킬로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적 기반시설의 부재로 인해 재난에 대비하는 시설이 극도로 취약한 상태이며, 특별히 일상화된 홍수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오늘날 라오스의 일인당 평균 소득은 하루 1달러 미만이다. 전국적으로 묻혀있는 수백만 개의 터지지 않은 지뢰들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의 대표적인 상처이다. 이 지뢰들은 아직도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농장지역과 삼림 속에 묻혀있다. 또한 인근의 다른 나라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웃한 태국의 성매매 산업으로 팔려가는 아동들과 여성들의 납치와 인신매매는 심각한 사회 문제이다.

 

라오스에 처음 기독교를 전해준 이들은 17세기에 찾아온 이탈리아의 예수회 선교사들이었다. 현재 모든 로마 가톨릭 교회의 주요한 선교단체들은 태국과의 접경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1950년을 기점으로 가톨릭 교회 선교사들은 선교의 중심을 산악지역의 주민들로 바꾸었다. 첫 개신교 선교사들은 스위스 형제단(Swiss Brethren) 소속의 선교사들로 1902년에 도착한 이들은 성서를 라오스어로 번역하였다. 1957년 이래로 해외선교사협의회(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를 중심으로 개신교 선교가 강화되어 왔다. 개신교회들 중에서 라오스 복음교회(Gospel Church of Laos)가 가장 성공적인 교단으로 성장하였다. 1970년대 기간 중 공산당 정부는 모든 가톨릭 학교들과 고아원들, 기숙사와 교회들을 국유화하였고 모든 종교교육을 폐지하였으며, 모든 외국인 선교사들은 강제로 추방되었다.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모든 공적인 모임은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으며, 의무적으로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특별히 기독교인들은 친서구파 혹은 체제전복을 바라는 세력으로 간주되고 있다.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Socialist Republic of Vietnam)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지만 동시에 푸른 하늘과 빛나는 태양, 그리고 아이들의 눈동자와 같은 많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지요. 우리들 또한 이러한 생의 경이로움을 잊어서는 안 되지요. 그 경이로운 대상들은 바로 우리 안에, 우리 주위에,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지요. 만약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면, 만약 우리가 평화롭지 않다면, 우리는 행복과 평화를 이웃들과 나눌 수 없답니다. 심지어 우리가 사랑하는, 우리와 함께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과도 말이지요. 만약 우리가 평화롭고, 만약 우리가 행복하다면, 우리는 미소지을 수 있고, 꽃과 같이 활짝 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과 전체 사회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은 우리의 평화로 인해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틱 낫 한(Thich Nhat Hahn)>

 

통계

인구 : 8,260만 명

정부형태 : 공산당 일당독재

언어 : 베트남어 외에 프랑스어, 중국어, 태국어, 무옹어(Muong), 크메르어, 몬탁나르어(Montagnard), 영어와 60여 부족언어

문맹퇴치율 : 93%

종교 : 불교 50%, 소수민족 종교 9%, 기독교 8%(대부분 로마 가톨릭 교인), 무신론 6%, 중국계 부족종교 1%, 이슬람교 1%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없음

 

역사

베트남은 남지나해(South China Sea)에 접하고 있으며, 북쪽으로 중국, 서쪽으로 라오스와 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베트남인들의 기원은 주전 6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독립된 단일왕조가 세워진 것은 주후 1400년이었다. 19세기에 프랑스는 베트남과 그 외의 인도차이나 반도 국가들을 식민지로 삼았다. 이차 세계대전 기간 중 일본의 침공을 받았고, 1945년 이차대전이 끝나면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진행하는 중에 둘로 나뉘어졌다. 남쪽에는 프랑스의 식민정부가 다시 들어섰으나, 북쪽에는 호치민이 독립을 선언하며 세운 베트남 민주주의 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Vietnam)이 주도하는 민족주의 계열이 장악하였다. 정치적 주도권을 둘러싼 수십 년간의 전쟁은, 일단 1954년 프랑스가 철수할 때까지 계속되었고, 그 후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사이의 전쟁이 계속되었다. 1961년 미국이 남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하여 참전하였고, 1973년 휴전협정 때까지 막대한 군사력을 투입하였다. 1975, 남베트남은 북베트남 군대에 의해 멸망하였다. 폭력은 계속되었고, 베트남은 인접한 캄보디아를 침공하였으나 중국이 개입하면서 퇴각하였다.

 

전잰 기간 동안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은 베트남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고, 경제적인 교류도 거부하였다. 때문에 베트남은 오랫동안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나라로 지내야 했다. 1986도이 모이”(경제 개혁)라는 정책이 시작되면서 개인과 집단, 국가의 재산권을 혼합하는 경제정책이 장려되었다. 1994년 국제적인 교류가 재개되었고, 다른 나라들과의 외교 관계가 회복되었다.

 

1992년 독자적인 헌법을 제정하였고, 헌법에 따라 5년마다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선거를 통하여 뽑힌 의원들이 단원제 의회를 구성하게 되었다. 현재는 베트남 공산당이 유일한 정당이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대략 일천 삼백만 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었고, 아직도 이백만 명이 국외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쟁 중 미군이 사용한 환경파괴적인 고엽제로 인하여 베트남 외곽의 광대한 삼림지역 황폐화되었다. 한참 전투가 치열하던 시기에는 전 국토의 삼분의 이에 달하는 숲이 피해를 입었다. 여기에 불법적인 목재 채취와 화전농의 확대로 환경문제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불교와 유교, 도교는 처음 베트남에 뿌리를 내린 종교들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베트남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은 이 종교들과 함께 여러 종교가 혼합된 소수민족 종교들이다. 1580년 로마 가톨릭 교회의 프랑스 선교사들을 통해 처음으로 기독교가 소개되었다. 이들은 여러 세기에 걸친 박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고, 뿌리내리는데 성공하였다. 때문에 로마 가톨릭 교회가 여전히 베트남의 지배적인 기독교이며, 특별히 남부지역에서 그렇다. 이는 이차 세계대전 후 베트남이 분단되는 시기에 많은 가톨릭 교인들이 남쪽으로 이주하였기 때문이다. 적지만 개신교회와 복음주의 교회, 등록되지 않은 가정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도 있다. 전쟁의 혼란기 중에 모든 종교 단체들은 많은 고난을 당했다. 1966년 불교인들은 자유선거와 정통성을 가진 정부의 구성을 주장하면서 남베트남 정부를 전복하고자 여러 번 시도했고, 이에 대한 남베트남 정부와 미국의 극심한 탄압이 이어졌다. 최근 몇 년 동안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모든 종교단체들에 대한 엄격한 제한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일부 기독교인은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심지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 정기적인 모임은 대부분 사라졌고 교회들은 파괴되었다.

 

함께 드리는 기도

 

감사 기도 제목

지뢰 제거를 위하여 일하는 이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팔다리를 잃은 사람들을 보살피는 이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오랜 망명 기간을 끝내고 고향에 돌아와 복음을 전하고 새롭게 교회를 시작하고 있는 캄보디아의 기독교인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 기도 제목

내전과 집단학살 혹은 홍수와 자연재해로 인하여 슬퍼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이십 세기 중엽에 일어난 처참한 내전과 집단학살로 인해 많은 것을 잃고 고난당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기 나라에서 납치되어 강제로 성산업에 투입되는 여성들과 아동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동남아시아에 경제정의가 세워지고, 부유한 외국에 진 빚을 줄이거나 탕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캄보디아의 어린이들이 전쟁을 연습하는 대신 평화를 알고, 함께 노는 것을 즐기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이들 나라의 국토가 다시 푸르게 되어 나무들이 상처받지 않고 열매들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하루 미화 일 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이들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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